Fernweh (떠나고 싶어...)
1. 향수병(Homesick)의 반대말, Fernweh
독일어에는 다른 언어권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아주 매력적이고 독특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Fernweh(페른베)'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영어의 'Homesick(향수병)'과 정확히 반대 지점에 서 있는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즉, 늘 익숙한 집이나 고향에만 머물러 있던 사람이 문득 느끼는 '어딘가 먼 세계로 낯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아련한 마음' 혹은 '먼 곳에 대한 동경'을 뜻합니다. 우리말이나 영어로도 단 한 단어로 깔끔하게 대치할 수 있는 표현이 마땅히 없는, 참 독특하고도 낭만적인 정서를 품은 낱말입니다.
2. 같은 인간의 개념, 다른 소리와 기호의 아키텍처
비록 'Fernweh'처럼 특정 문화권에만 존재하는 미세하고 독특한 감정 개념도 있긴 하지만,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 아키텍처는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합니다.
더구나 사지와 머리로 구성된 인간의 신체 구조 역시 인종을 불문하고 서로 다르지 않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본질적인 풍경 또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아빠와 엄마, 가족, 이웃, 매일의 식사, 동식물 등 생명 작용을 이어가고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인류가 사용하는 핵심 개념들은 어느 나라나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토록 결이 비슷한 인간 보편의 개념들을 표현하기 위해 각 문화권마다 전혀 다른 소리를 내어 전달하고, 또 그 소리를 받아적는 문자 시스템 역시 완전히 다르게 설계하여 사용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꼬불꼬불한 실선 형태로 주파수를 적었고, 어떤 이들은 세상의 사물을 그대로 본뜬 그림처럼 문자를 만들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동그라미를 여러 개 굴려가며 표기하기도 했지요. 그중에서도 우리의 위대한 세종대왕님은 우주의 근본인 천지인(天地人)의 형상과 인간의 발성 기관 모양을 정밀하게 본떠 소리를 완벽하게 디지털화하여 적는 전무후무한 과학적 문자 체계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3. 외국어의 뇌 회로: 기호를 건너뛰고 '소리에서 의미'로 가기까지
과거 독일에 장기간 거주하며 모국어가 아닌 타국의 언어로 소통하고 교류할 때, 언어가 뇌에서 인지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모국어를 구사할 때는 소리를 듣거나 뱉는 즉시 뇌 내부에서 중간 필터 없이 '개념'과 '의미'의 영역으로 다이렉트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합니다. 반면, 낯선 외국어를 처음 배울 때는 소리를 들은 뒤 뇌 속에서 물리적인 기호(알파벳이나 텍스트)라는 중간 정거장을 한 번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의미로 변환되는 복잡하고 느린 연산 회로를 거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를 처음 구사할 때는 문법과 단어는 맞을지언정, 도무지 모국어처럼 말 속에 담긴 미세한 감정의 결이나 깊은 '말의 맛'이 실리지 않는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중간 연산 과정에서 데이터의 감성적 뉘앙스가 일부 소실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그 언어의 환경에 노출되고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뇌 인지 시스템에 놀라운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납니다. 머릿속에서 문자 기호를 기계적으로 끄집어내던 징검다리를 건너뛰고, 외국어의 소리가 모국어처럼 곧바로 의미 영역으로 직통 연결되는 새로운 '다이렉트 뇌 회로'가 구축되는 순간입니다.
이 새로운 신호 변환 회로가 뇌에 안착하고 나면, 비로소 외국어라는 도구 위에도 인생의 희로애락과 미세한 말의 풍미가 온전히 실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뇌가 가진 유연성과 언어 시스템의 신비로움을 체감하게 되는 짜릿한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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