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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의 가치

1. 속박이 있어야 자유를 느낀다

"속박이 있어야 자유를 느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내 생각이 명확해진다."

"막등이 있어야 일등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 상반된 가치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이러한 명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당연한 상식으로 통합니다. 서로 다른 극단의 가치가 공존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같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함께 어우러질 수 있어야만 비로소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상식이, 왜 유독 타인과의 현실적인 관계 속에서는 이토록 삐걱거리며 분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2. 독일 보쉬(BOSCH) 시절, '반대편'의 엔지니어들을 만나다

과거 독일 보쉬 본사에서 25년간 수많은 글로벌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이끌며 전 세계의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협력하고 갈등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엔지니어링의 세계는 얼핏 보면 차가운 데이터와 완벽한 정답만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인간들의 세계는 그 어떤 곳보다 주관과 프레임의 충돌이 격렬한 곳이었습니다.

독일인 엔지니어, 한국인 엔지니어, 그리고 수많은 다국적 부서의 동료들은 저마다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기술적 백그라운드를 바탕으로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바라보았습니다. 프로젝트가 고도화될수록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초기에는 저 역시 내가 가진 기술적 프레임과 논리 안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끼워 맞추고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내 프레임 안에서 상대의 가치를 재단하려 할 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타협 없는 평행선과 감정적인 분쟁뿐이었습니다. 기계 시스템은 오차가 없어야 하지만, 인간 시스템은 완벽한 정렬을 강요할 때 오히려 부러진다는 물리 법칙을 현장에서 처절하게 배운 셈입니다.

3. '내가 보는 너'와 '네가 보는 나'의 비대칭성

인간관계의 오류는 바로 아래의 도해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을 바라볼 때 '내가 보는 너'라는 거대한 나의 프레임(파란 원) 안에 상대방의 존재(빨간 원)를 집어넣고 해석하려 합니다. 내 기준에서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그러나 상대방 역시 '네가 보는 나'라는 거대한 자신의 프레임(빨간 원) 속에 나라는 존재(파란 원)를 아주 작게 포함시켜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도출됩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을 결코 '내 생각의 프레임' 안에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 방식대로 가공해서 이해하려는 순간 시스템에는 과부하가 걸리고 분쟁이 생깁니다.

상대방을 내 기준에 맞춰 올곧고 가지런한 모양으로 억지로 깎아내어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내가 모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상대를 내 마음의 영토 안에 포함하되, 결코 나의 프레임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공존의 시작입니다.

4. 디지털 그리드 위에서 공존을 배우다

현역 시절의 끈적한 조직 울타리를 벗어나, 이제 구글과 유튜브라는 방대한 디지털 네트워크 생태계 속에서 새로운 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세상 역시 수많은 반대편의 가치들이 충돌하는 거대한 매트릭스입니다.

나와 결이 다른 악성 댓글을 마주할 수도 있고, 내가 공들여 쓴 글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디지털 세상에서도 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지속 가능한 출력을 내기 위한 정답은 같습니다. 반대편의 가치를 내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존중할 때, 내 아카이브의 깊이는 더욱 명확해지고 단단해집니다.

서로의 프레임을 강요하지 않고 각자의 원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것, 그것이 이 거대한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유쾌하게 롱런할 수 있는 마스터의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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