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 Emotion
1. 인간이라는 시스템의 초기 설정값(Default Value)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자동차의 전자제어장치(ECU)를 세팅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시스템이 부팅될 때의 초기 상태, 즉 '디폴트(Default) 값'입니다. 이 기본 설정값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시스템의 전반적인 구동 성향과 리소스 분배 방식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우리 인간의 내면 아키텍처 역시 오랜 성장 배경과 환경, 그리고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름의 운영체제(OS) 회로를 형성하게 됩니다. 생물학적 치명 오류(Bug) 수준으로 완전히 망가진 극단적인 회로는 아닐지라도, 개인마다 저마다의 특징적인 '기본 상태'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중에서도 인간의 일상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감정 회로'를 예로 들면 이 디폴트 값의 차이가 아주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2. 감정 스펙트럼 위의 좌표(x)와 편향(Bias)
기쁨과 슬픔, 혹은 관용과 분노를 느끼는 감정 회로 속에서, 어떤 이들은 정확한 영점(중립)이 아닌 약간 기쁨과 긍정의 방향으로 디폴트 값이 치우쳐 세팅되어 있습니다. 이런 회로를 가진 이들은 세상만사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이즈와 역경을 마주하더라도, 시스템 자체의 완충 능력이 뛰어나 비교적 즐겁고 유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입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관용과 수용보다는 분노와 짜증, 혹은 방어기제 쪽으로 디폴트 값의 좌표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이 경우 외부에서 아주 작은 자극(Input)만 들어와도 회로가 쉽게 과열되어 만사를 짜증스럽고 날카롭게 대하게 됩니다. 시스템의 기본 노이즈 레벨 자체가 높게 정렬되어 있는 셈입니다.
3. 나의 Default Emotion을 진단하고 반성하다
그렇다면 평생을 정밀한 기계 제어 시스템과 씨름하며 살아온 내 안의 감정 기본값, 나의 'Default Emotion(기본 감정)'은 과연 어느 좌표에 찍혀 있을까요?
기쁨 ----------x-------슬픔
관용 =======x===분노
스스로의 삶을 가만히 복기하며 이 제어 시스템의 상태 창을 열어보니, 안타깝게도 나의 초기 세팅값은 관용이나 기쁨보다는 짜증과 예민함 쪽으로 다소 편향(Bias)되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 엔지니어 특유의 미세한 오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정밀함과 날카로움이, 어쩌면 인간관계의 회로 속에서는 스스로를 쉽게 지치게 만드는 '짜증'이라는 형태의 과부하로 출력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초기 설정값이 기쁨과 긍정으로 세팅된 축복받은 이들에 비하면, 저처럼 디폴트 값이 다소 무겁게 세팅된 사람들은 사회생활이라는 거대한 트랙을 달릴 때 엔진에 훨씬 더 많은 피로가 누적되고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제어 리소스를 써서 감정을 억누르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4.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감정 회로 보정(Calibration)'
하지만 실망하거나 이 상태를 방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학에서 초기 디폴트 값에 결함이나 편향이 발견되면, 우리는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 보정)' 공정을 통해 시스템의 출력값을 정상 범위로 끊임없이 유도합니다.
내가 가진 감정의 디폴트 값이 짜증 쪽에 가깝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한 순간부터, 역설적으로 진짜 튜닝은 시작됩니다. 외부 자극에 내 시스템이 자동으로 짜증이라는 전류를 흘리려고 할 때마다, 의식적인 보정 제어 신호를 보내 선로를 관용과 여유 쪽으로 조금씩 틀어쥐는 것이죠.
인생이라는 긴 주행 시험에서 내 엔진이 지치지 않고 부드럽게 구동되도록, 오늘도 내 마음의 제어판을 열고 미세한 감정의 오차들을 유쾌하게 보정해 나가는 연습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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