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의 한계
XY 염색체의 불완전성과 공동체라는 인공적 연대
1. 모성(母性)이라는 미지의 영토를 바라보며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빠이자 남편으로 살아가면서, 문득 아내와 딸의 모습 속에서 나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른 생명 지향적 결을 발견하곤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미래의 생명이 될 알(난자)을 품고 태어나는 여성들과 달리, 우리 남성들은 스스로 새로운 생명을 태중에 잉태하거나 낳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여성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경험하는, 새끼를 낳고 기르는 그 눈물겹고 애틋한 '모성(母性)'이라는 감정의 깊이를 우리 수컷들은 온전히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를 길러주신 어머니의 모습에서, 결혼한 후에는 가정을 함께 일구는 와이프의 행동에서, 그리고 어느덧 훌륭하게 성장한 딸아이의 모습 속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생명 존중의 일면을 목격할 뿐입니다. 그 경이로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저 '아, 저런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느낌이 바로 모성이구나' 하고 멀리서 추측하고 동경할 따름입니다.
2. 23번째 성염색체, Y가 가진 생물학적 불완전성
인간의 유전 아키텍처를 결정하는 23번째 성염색체를 들여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차이가 물리적 형태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여성의 완전한 대칭 구조를 이룬 'XX 염색체'와 달리, 우리 남성의 것은 온전한 X자를 만들지 못한 채 한쪽 다리가 유실되어 날아가 버린 불완전한 'Y'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유전적 오차와 생물학적 결핍 때문일까요? 저는 평소에 인터넷이나 다양한 서적을 뒤적이며 인류가 살아온 역사와 발자취를 살펴보는 일에 유독 관심이 많고 깊게 몰입하는 편입니다.
간혹 '내 안에 생명을 스스로 창조해 낼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보니, 인류가 구축한 거대한 지식과 삶의 궤적을 통해서라도 그 창조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대리 만족해 보려는 일종의 무의식적 반작용은 아닐까' 하는 엔지니어다운 엉뚱하고도 진지한 가설을 세워보기도 합니다.
3. 결핍이 만들어낸 위대한 연대: 국가와 회사
어찌 보면 생명을 직접 잉태하지 못하고 씨앗만 전달하는, 다소 공허하고 쭉정이 같은 수컷의 본질적인 삶에는 거부할 수 없는 근원적인 슬픔과 콤플렉스가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재미있는 점은, 수컷들이 가진 바로 이 생물학적 결핍과 슬픔 때문에 오히려 역사 속에서 서로 강하게 스크럼을 짜고 '연대(Solidarity)'를 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낼 자연적 재간이 없으니, 수컷들은 서로 간의 상호 신뢰와 시스템적 규약을 바탕으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던 거대한 인공적 생명체를 창조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이고 '회사'이며, 다양한 사회적 '공동체'들의 본질입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는 위대한 모성을 지닌 여성들(암컷) 역시 이 사회적 공동체를 완벽하게 리드하고 운영해 나가지만, 최초에 인간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대한 조직 체계를 설계하고 결속했던 기저에는 수컷 특유의 결핍과 방어기제가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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