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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분쟁

생물학적 생존 전략의 차이와 유럽에서 배운 갈등의 필연성

1. 우주 속 극히 일부의 기적, 생명작용의 시작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물질의 세계를 가만히 관찰해 보면, 사실 대부분의 물질은 아무런 의지나 생명작용 없이 물리 법칙에 따라 그 자체로만 고요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방대한 물질 중 아주 극히 일부분의 원소들이, 도대체 어떤 계기와 메커니즘으로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신비의 영역이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뭉쳐 복잡한 세포(Cell)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세포들끼리 서로 결합하여 또 다른 물질과 영양분을 정밀하게 주고받으며 스스로를 유지하고 복제하는 고도화된 '생명작용'을 수행해 냅니다. 우리 인간 역시 그 기적 같은 유기적 생명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2. 하드웨어와 생존 아키텍처의 다름이 만드는 필연적 노이즈

흥미로운 점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하나의 생명 단위가 모두 서로 판이한 진화적 탄생 배경과 유전적 히스토리를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드웨어 세팅이 다르니, 시스템(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제어 방법과 소요 연료 역시 당연히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유기체는 생명 유지를 위해 수분($H_2O$)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식물과 같은 또 다른 유기체는 이산화탄소($CO_2$)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아야만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어떤 생명체는 공기 분자의 보이지 않는 진동(소리)을 타고 이동하며 환경을 인지하고, 인간과 같은 어떤 생명은 골격과 근육을 통해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고도화된 물리 조직을 발달시켰습니다.

이렇게 각각의 생명체는 생명을 유지하는 내부 알고리즘과 생존 전략이 모두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자원(Resource) 속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한데 모여 살아가는 사회라는 네트워크 안에서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동하고 생존을 도모하려다 보니 필연적으로 서로 간의 영역이 겹치고 충돌하는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쟁은 시스템의 결함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하드웨어들이 모였을 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구조적 노이즈'인 셈입니다.

3. 유럽 비즈니스 현장에서 목격한 '분쟁과 법'의 아키텍처

과거 독일 보쉬 본사에서 25년 동안 근무하며 유럽의 수많은 현지 엔지니어,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치열하게 프로젝트를 조율할 때 이 생명과 분쟁의 결합 관계를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유럽 사람들은 얼핏 보면 지성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개인과 개인의 생존 프레임이 충돌할 때 싸움을 시작하는 임계점(시점)이 우리 한국 사람들에 비해 훨씬 빠르고 격렬합니다. 타협 없는 평행선이 아주 순식간에 형성되곤 했지요. 서로 다른 역사와 철학적 디폴트 값을 가진 이들이 좁은 유럽 대륙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하려다 보니, 갈등의 강도가 본능적으로 높게 세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격렬한 충돌을 보며 '아, 이 거친 수컷들의 본능적인 폭주와 분쟁을 억누르고 제어하기 위해, 이 서양 미디어 환경에서는 그토록 정밀하고 차가운 규칙인 법(Law)과 계약서 시스템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는 구조적 인류학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결국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분쟁의 연속이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제어하고 조율해 나가는 무한한 '디버깅(Debugging)'의 과정입니다. 세상에 갈등이 없는 완벽한 정적 상태란 생명작용이 완전히 멈춘 무생물의 세계뿐입니다. 내가 살아있기에 매일의 분쟁과 마주하는 것이며, 그 갈등을 유쾌하고 명확한 나만의 룰로 돌파해 나가는 것 자체가 바로 생명이 가진 가장 역동적인 증거(Proof of Lif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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